'바보의사 박인숙의 끝나지 않은 성장토 이야기' 책의 추천사
<소아과 의사에서 사회의사까지> by 김병종 (화가.서울대교수)
박인숙 선생님은 의사다. 아주 유능한 의사다. 그리고 씩씩하다. 임상이나 연구에서도 씩씩하고 일상의 삶에서도 씩씩하다. 걸음걸이마저 씩씩하다. 그 씩씩한 보폭으로 본업인 의학 분야 뿐 아니라 그 인접 혹은 방계영역 깊숙한 곳까지 힘차게 걷는다. 그런데 그이가 걷다가 멈춰 서서 응시하는 곳에는 필경 우리가 함께 보아야할 어떤 시선이나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나 사건에 직면할 경우에 그이는 메스대신 펜을 든다. 아니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기는 거겠지. 그이의 필력은 미시적인데서 거시적인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건드리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부분에서는 일전불사의 장검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이의 자판이 요란하게 난타당할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서슬 퍼런 글발에서는 분노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인 것이다. 그 고운 모습 어디에서 저토록 거센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수 있는 것인지, 글을 읽으며 속으로 감탄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그이는 참 의기(義氣)가 강한 의사이다. 나쁜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해 벌려놓은 짓거리들을 못견디고 찾아내 도려내듯이 우리 사회의 곪고 터진 환부마다 메스를 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의사라야 전인적 의사가 아닌가 싶다. 개인의 질병이나 미약 상태의 상당부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개인이 처한 사회의 한 구조적 어두움이나 악의 부분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쉰 같은 의사가 사회를 고치는 혁명가의 길로 나섰던 것이나 의학박사 체게바라가 역시 의사의 길을 접고 혁명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사 박인숙은 대부분 사적 비전의 의기를 공적 논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이가 멈춰서 응시 하는 부분도 사회전체의 구조적 거악과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인습과 폐단으로 굳어진 작은 부분들이 많다.
시인 김수영은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라는 자탄 섞인 시를 썼지만 어찌 보면 큰일에 분노하는 사람은 많아도 작은 일의 불합리와 폐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의외로 적기 때문에 이 또한 소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가끔 그이의 의기는 원고지 바깥으로 튕겨져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나는 귀동냥으로나마 의학이나 의사동네 혹은 그와 관련된 국가체계의 한 부분에 대해 알 수있게 된다. 예를 들면 식사를 하다가 어떤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묻는 경우, 그이는 문외한이라도 ‘아,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 이때 씩씩한 인숙씨는 어느새 친절한 소아와 의사 인숙씨로 돌아와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토의나 의견조회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자상하고 섬세하며 거기다 수줍음 많은 여자로 돌아오는 것이다.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내가 “학교 때 줄창 수석만 한 것 아니에요? 공부만 파고드는 범생은 별론데...” 하고 농담을 했더니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수석만 한 게 아니에요.” 하고 금세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짐짓 “뭘 그러세요. 나 모범생, 나 수재 하고 얼굴에 써 있는데” 했더니 공부 잘했다는 혐의를 벗어나려는 듯 연신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하는 모습이 우스워 그만 좌중이 파안하고 말았던 것이다. 과연 의사 박인숙은 세상과 담쌓고 연구와 임상에만 골몰하는 범생이가 아니었다. 불의한 곳에는 헛발질이라도 내지르고 싶어하는 강한의사였다. 하지만 마음이 여리기로 말하면 의사 박인숙 같은 이도 드물 것이다. 특히 그 “여림”의 의미가 소녀적 감성에서가 아닌 우리사회의 아프고 그늘진 곳을 향할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바쁜 중에서도 나라 안팍의 불우 시설들이나 환자보호소 같은 곳을 빠지지 않고 돌아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이 또한 전인적 의사가 갖추어야할 미덕의 하나가 아닐까싶다. 환자의 고통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 특별히 불우한 환자의 아픔과 슬픔에 공명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이도 좋은 의사가 되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인숙 선생과 몇 사람이서 제법 긴 시간동안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영국의 콧츠월드 쪽 이라고 기억되는데 작고 예쁜 선물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 박선생과 부딪치곤 했다. 그이는 물건을 고르고 나면 “김선생, 이건 어때요?”하고 내게 묻곤 했다. 명색이 화가이니 미적 안목에서 당신이 나 보다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이게 예쁘네요.”하고 골라드리면 “정말 이쁘네”하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한 가게에서 연두바탕에 하얀 양이 그려진 쇼핑백하나를 골라 버스에 올랐는데 뒷좌석의 내 아내가 보고 “어머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래요?”하던 박선생도 “예쁘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는 아내 앞에 배겨내지를 못했다. 잠시 고민에 빠지던 박선생은 이내 “정선생 이거 정선생이 가져.” 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주셔도 되겠어요? 고맙습니다.” 하고 얼른 그 쇼핑한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이 두 여인의 주고 받는 손을 보면서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고르고 골랐던 물건을 선뜻 놓아버리는 손과 그 물건을 받아 챙기는 손이라니,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이 짧은 소화(笑話)의 한 대목을 가지고서도 의사 박인숙의 담백한 성품과 따뜻한 마음새가 읽혀지는 것이다.
이번의 책은 그이가 세상을 향해 쏘아댄 글의 화살이다. 화살인 만큼 부드럽지 않다. 부드럽기는커녕 아프게 내리 꽃혀지는 대목들이 많다. 글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미문(美文)도 아니고 감각적인 재미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읽는 중에 고개를 끄덕여지는 대목, 한숨을 내쉬게 되는 대목이 많다. 그이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 계몽되어지는 부분들이 생겨남을 느낄 수있었다. 의학과 관련되어 계몽되어져야할 나 같은 문외한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11년 10월 |